삼성 라이온즈 팬이 장필준의 생일을 맞아 선수단에게 보낸 커피차. 삼성 라이온즈 제공.
몇 해 전의 일이다. 국외에서 사업을 하던 한 지인은 “○○ 선수단에 회식을 쏘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 타향에서 마음고생, 몸 고생이 심한데 그의 응원 팀이 유일하게 삶의 활력이 되어줘 고마워서 그렇단다. 워킹맘 지인도 물었다. “△△△ 선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하고 싶은데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을까요?” 그 또한 같은 이유였다. “팍팍한 삶에 그나마 △△△ 선수 덕분에 웃거든요.” 야구 선수들을 향한 애정 표현은 생일 케이크나 떡, 혹은 초콜릿 선물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요즘은 연예인한테나 봤던 야구 커피차까지 등장했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커피차 행렬이 나날이 이어진다.
삼성 라이온즈 팬이 임현준을 위해 보낸 커피차.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19년 11월21일 마무리 훈련 중이던 구자욱에게 처음 커피차가 배달된 뒤 경쟁하듯 계속된다. 그 대상은 김대우, 장필준, 강민호, 오승환, 우규민, 임현준, 박해민, 원태인 등 신구 선수를 가리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호세 피렐라(8일 삼성 라이온즈 여성팬 밴드), 강민호(10일 시즌권 회원들), 김지찬(11일 개인 여성팬)이 커피차 주인공이 됐다. 강민호는 “출근해서 커피차가 있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는 면이 있다. 팬들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다른 구단들과 비교하면 삼성의 ‘커피차 조공’은 더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롯데 자이언츠처럼 구장 사정이 있거나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처럼 자체 매장(스타벅스)이 있는 탓도 있으나 나머지 구단들의 경우 커피차가 흔하지는 않다. 9개 구단 커피차 선물을 다 합해도 삼성을 못 이긴다. 올 시즌 삼성 성적이 좋은 이유도 있다. 소위 왕조 시절 이후 하위권을 맴돌던 삼성은 신구 조화 속에 올해는 상위권 다툼을 하고 있다. 시즌 20승, 30승 고지도 맨 먼저 정복했다. 여기에 자체 유튜브를 통해 선수들이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 면도 없지 않다. 퇴근길 직캠에서 사복 패션을 노출하며 평소 생각을 말하고, ‘고요 속의 외침’ 등 자체 게임으로 인간적인 면을 드러낸다. ‘돌부처’ 오승환까지 스스럼없이 녹아들면서 팬과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평소 생글생글 잘 웃으며 팬 서비스에 앞장 섰던 김대우의 경우 삼튜브를 통해 팬이 더 늘어났다. 강민호와 함께 올해만 지금껏 두 차례나 커피차를 선물 받은 배경이다. 평소 “좋은 선수도 좋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온 김대우는 “작은 마음, 큰 마음 저는 복 받은 선수”라고 했다. 그는 팬들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고약한 바이러스는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스포츠 없는 나날을 보내고, 관중이 없는 곳에서 경기를 하면서 선수와 팬은 동반자적 관계를 다시금 인지했다. 그저 야구만 잘하면 되는 시절은 지났다는 것도 깨달았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감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선수가 진심이면, 팬도 진심이 된다. 야구는, 야구 선수는 팬들에게 일상을 공유하며 울고 웃게 만드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커피차는 그런 마음의 발로라고 하겠고. 김대우의 말처럼 ‘좋은 선수’가 아닌 ‘좋은 사람’이 팬을 움직인다.
whizzer4@hani.co.kr
삼성 라이온즈 ‘찐팬’임을 입증한 트로트 가수 이찬원이 보낸 커피차. 삼성 라이온즈 제공.
Adblock test (Why?)
기사 및 더 읽기 (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좋은 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팬을 움직인다 - 한겨레 )
https://ift.tt/3gqmB7y
스포츠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좋은 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팬을 움직인다 - 한겨레"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