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검객' 김정환 “성공보다 3~4배 많은 패배 겪어…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 한겨레

[‘찐’한 인터뷰] 올림픽 3연속 메달 펜싱 사브르 김정환
1년 선수자격정지 등 험난했던 20대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해 28살 때
광저우 ‘금’ 놓쳐 펜싱 관둘까 고민
다 이겨내고 런던·리우·도쿄서 메달

다트·볼링·탁구에 가위바위보까지
승리 못 하면 잠 못자는 승부욕
“지금이 황금기…내년 항저우 도전”

김정환이 7월24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개인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입술을 깨물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정환이 7월24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개인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입술을 깨물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44-45. 결국 팀은 졌다. 그의 아쉬움은 더 짙었다. 그때가 2010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직전 해(2009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터라 상심이 크던 때이기도 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사브르 남자 단체전)을 눈앞에서 놓친 그는 다시금 고민했다. ‘그냥 펜싱을 관둘까.’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2020 도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은 그렇게 완성됐다. 펜싱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고 있는 18일 강원도 홍천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은 “사람들은 지금 나의 성공한 모습만 보지만 그 뒤에는 성공한 만큼의 3~4배 패배가 있었다. 많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됐다”고 했다. 20대를 돌아보면 그는 수면제 복용으로 인한 금지약물 검출, 1년 선수 자격정지 등 숱한 일을 겪은 뒤 운동선수로는 다소 늦은 30대에 비로소 만개했다. 그가 스스로를 “늦게 핀 꽃”이라고 칭하면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승부의 사나이
김정환은 지고는 못 사는 체질이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져도 분해서 잠을 못 잔다. 스스로도 “잔인한 승부사”라고 말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직후 은퇴한 뒤 그를 꿈틀대게 한 것도 ‘승부욕’이었다. 쉬는 기간 “마음속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목표 점수를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다트방을 드나든 적도 있다. 하루는 밥도 안 먹고 13시간 동안 다트만 던져서 “나중에는 팔이 아파서 수저까지 못 들 정도”였다. 다트 목표치를 이룬 다음에는 볼링에 빠졌다. 원하던 점수를 딴 뒤 접한 것은 탁구. 하루 8~9시간 동안 김두홍 감독(국민체육진흥공단)과 탁구만 했다. 김 감독에게 지는 날이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밤새도록 연구했다. 김정환은 “탁구는 포인트 관리법이 펜싱과 비슷하다. 지금은 상대방이 못 치게끔 정확히 에지에 공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못 말리는 승부욕은 훈련 때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전 훈련 때 후배에게 지면 오후 훈련 때 기필코 이기고 만다. 생각대로 경기가 안 풀려서 검을 꺾어버린 적도 여러 차례. 그는 “승부욕이 없다면 허망함과 공허함만 남을 것 같다. 지거나 그러면 분노와 오기로 칼을 갈면서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금, 은, 동 메달 색깔은 개의치 않는다. “꾸준히 여러 대회에서 생존(입상)만 하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동메달을 “로즈골드”라고도 칭한다. “값어치는 똑같기 때문”이다.
김정환은 습관적 메모광이다. 틈틈이 적어놨다가 경기 때 활용한다. 김양희 기자
김정환은 습관적 메모광이다. 틈틈이 적어놨다가 경기 때 활용한다. 김양희 기자
사브르는 내 운명
초등학교 시절에는 리틀야구를 했다. 아버지가 대학 때까지 야구 선수였던 영향이 있었다. 1주일에 3번은 잠실야구장을 찾아 “엘지(LG) 트윈스!”를 외쳐댔다. 엘지가 아쉽게 패하면 관중석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펜싱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꼬드김으로 시작했다. “쫄쫄이바지 입고 하는 운동”이라서 처음에는 기겁하고 거부감이 있었지만 점점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브르는 상체 찌르기, 베기(후려치기) 전부 가능해서 에페, 플뢰레와 비교해 거친 편인데 다혈질적인 그의 성격과 궁합이 잘 맞았다. 김정환이 “사브르는 내 운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피스트 위에서는 “입술이 파래지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매섭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보통 선수는 한 타임 훈련 때 2~3게임을 하는데 그는 8~9게임까지도 소화한다. 후배들이 “형, 이러다 죽어요”라고 말려도 그는 목표치를 이룰 때까지 절대 검을 놓지 않는다. “피스트 위에서 다치는 것은 하나도 겁이 안 난다”는 그다. 김정환은 “연습한 대로만 하면 순위가 나오는데 막상 피스트 위에 올라가면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있다. 그래서 꼭 메모하고 경기 전에 음악을 들으면서 요점 정리된 메모를 읽는다”고 했다. 이번 올림픽 때는 ‘엄지발가락, 허리, 손’ 세 단어를 왼손등에 써놨다. 김정환은 “후배인 구본길, 오상욱이 타고난 펜싱 천재라면 나는 후천적 노력파”라고 했다.
펜싱 국가대표 김정환(왼쪽)이 7월2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아내의 목에 메달 두개를 걸어주고 있다. 작년 9월 결혼한 김정환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내에게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 고 싶었다. 가장으로서 어떤 역경도 이겨낼 의지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더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펜싱 국가대표 김정환(왼쪽)이 7월2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아내의 목에 메달 두개를 걸어주고 있다. 작년 9월 결혼한 김정환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내에게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 고 싶었다. 가장으로서 어떤 역경도 이겨낼 의지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더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아버지의 꿈, 올림픽
김정환은 이번 도쿄올림픽 사브르 종목에 출전한 전 세계 선수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대표팀 막내 오상욱과는 13살 차이가 났다.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를 이끌고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그는 “신구 조화가 너무 좋았다. 다시는 이런 조합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어펜져스’는 현재 거의 모든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중인데, 김정환은 “우리끼리는 ‘물 들어올 때 (배) 엔진 켜자’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을 딴 그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있다. 그의 26년 펜싱 인생에 든든한 조력자였던 아버지의 생전 소원이 올림픽 무대에 선 아들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좌절되고 1년 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김정환은 “내가 대회 메달을 따면 아버지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지난 주 꿈속에 아버지가 나오셔서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아내와 함께 아버지 묘를 찾아 금메달, 동메달을 보여드렸다.
김정환이 아버지 묘 위에 올려둔 올림픽 메달들. 김정환 제공.
김정환이 아버지 묘 위에 올려둔 올림픽 메달들. 김정환 제공.
김정환은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고 했다. “산봉우리 정상에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나이인 서른 아홉살에 최고 황금기를 맞았다. 산에 오를 때보다는 내려올 때가 더 힘든 법인데 때가 되면 예쁘게 하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당장은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생존’을 목표로 두고 있다. 최고 황금기의 ‘서른아홉 김정환’은, 과거 절망 속에 있던 ‘스물여덟 김정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잠시 고민하던 김정환이 답했다. 어쩌면 지금의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많이 힘들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네가 꿈꾸던 것, 남은 나날들이 보답해줄 거야.” 홍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Adblock test (Why?)

기사 및 더 읽기 ( '검객' 김정환 “성공보다 3~4배 많은 패배 겪어…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 한겨레 )
https://ift.tt/3j0XcCw
스포츠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검객' 김정환 “성공보다 3~4배 많은 패배 겪어…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 한겨레"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